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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BGM] 교수형 당하기 직전까지 그가 외쳤던 한 마디

음바페여친 2016. 9. 4. 15:01

출처 : https://www.pikicast.com/#!/menu=landing&content_id=251097

BGM 출처 : https://youtu.be/wfPcdLfl8lw




1919년 9월 2일

서울역에 도착한 조선총독부 제3대 총독 사이코 마코토









조선을 망치러 온 또 한 명의 침략자가

우리 땅을 밟았다









그가 마차에 오름과 동시에 들린 폭탄 소









역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혼란을 틈타 현장에서 급히 몸을 피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1859년 6월 5일, 평안남도 덕천에서

가난한 농가의 4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강우규 의사









그는 한의사로 인술을 베풀고

아이들에게는 성리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였다









1905년. 민족반역자들의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기울자

만주의 북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들과 조선의 독립을 모의했다









1915년 요동의 랴오허 현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꾀했고

요하 주변의 농토를 개간하여 한인촌인 신흥촌을 건설

불과 1년 만에 100여 호의 한인 마을로 성장시킨 강우규 의사는









광동중학교를 비롯하여 여섯 개의 학교를 세우며 

민족교육에 헌신하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썼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로 결심하고 

러시아인으로부터 수류탄을 구입

허형과 함께 한 손에는 수류탄

한 손에는 독립의지를 가지고 서울로 잠입한다









1919년 9월 2일, 사이토 마코토가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한다는 것을 알고 

사이토 총독을 폭살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60세 백발의 노인









그는 애국의 혼을 수류탄에 실어 사이토가 타고 있는 마차에 던졌다









육군 소장과 경찰서장 등 37명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안타깝게 사이토 마코토를 죽이는 것은 실패했다









그는 현장에서 몸을 피해 동료들의 집에 숨어 다녔지만









독립운동 탄압으로 유명한 민족반역자 친일 경찰 김태석에게 붙잡혀

9월 17일에 수감되었다









체포되어 재판받고, 교수형 당하기까지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당당했던 기개 때문에 

일본인 판사마저 '피고'가 아닌

'강선생', '영감님'이라고 부르던 강우규 의사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할 때까지 그가 외쳤던 한 마디















강우규 의사가 아들에게 남긴 유언















강우규 의사의 유해는 서대문 감옥 공동묘지에 있다가

해방 이후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되었고









강우규 의사를 잡아넣은 민족반역자 친일 경찰 김태석은

광복 후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친일파와 결탁한 이승만 정부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체될 때 풀려났다









9월 2일

누군가에게는 그저 바쁜 평일

누군가에게는 기대되는 금요일









그리고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노인에 의한 폭탄 투척 의거의 날









서울역을 지나가다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동상 주인공의

나라를 위했던 마음이 한없이 빛났던 날







출처 : I LIKE SOCCER (아이라이크사커)
글쓴이 : 통통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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