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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태민外] 최태민과 박근혜의 은밀한 관계.

음바페여친 2016. 10. 21. 13:24

 

 





지난 대선때 썼던 글 다시 올려봅니다.






 

 

오늘은 뒷공작 시리즈 말고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우선 최태민하고의 관계만 보더라도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박근혜는 지금껏 단 한번도 검증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김대중은 약관의 나이에 자기사업을 일으키고 만권이상의 책을 읽었고, 40권이상의 저서를 남겼어요.

경제/통일분야에서 나름의 이론을 정립시켰고, 최고의 국무위원 중 한사람이었으며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찾는 의원이기도 했죠.



노무현은 판사를 역임했고, 변호사시절에 뛰어난 승소율을 보였으며, 노동자를 이해하는 의원이었고, 노사정을 중재하는 능력도 보여주었습니다.

지방행정과 분권에 일가견이 있었고, 해수부장관시절에는 뛰어난 행정능력도 보여주었어요.



민주정부의 수장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두 분은 모두 검증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박근혜는 지 손으로 번돈이 단, 한푼도 없었죠. (국회의원 월급은 제외) 행정능력도 검증받은적이 없습니다.

14년간 발의한 법안이 단 15건.

아버지 후광으로 국회의원 되고나서 지금껏 온게 전부인것이죠.

여성 대통령의 오류가 여기서 나옵니다.

박근혜는 여성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 후광으로 여기까지 온것일뿐이에요.

만약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그저 그런 여성 정치인이었다면 대선후보로 거론도 못됐을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불안하고 검증받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자, 그럼 이제 최태민에 대해서 박근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90년 박근혜의 동생인 박근영과 박지만이 노태우앞으로 탄원서를 한통 보내긔. 이 탄원서는 12장이였고,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박근령이 쓴 탄원서




" 최태민 목사의 전횡과 횡포와 비리가 너무 심하다. 

우리 언니와 우리 가족을 최태민에게서 부터 구해달라, 언니말은 믿지 말라, 언니는 최태민에게 속아 최태민을 옹호하고 있다. 

대통령만이 우릴 구해줄 수 있다."

 

최태민과 박근혜



이 탄원서로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대해, 세상사람들의 궁금증이 증폭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최태민과 박근혜의 이상한 관계는 박근혜가 최태민과 어울리기 시작할 때부터 여러곳에서 말이 나왔고, 

이 둘사이를 떼어놓으려는 시도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유는 문제가 거론될때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보호했기 때문이죠.




 

 

이 최태민은 수사자료에만 나타난 범죄행위가 44건입니다.

횡령 14건, 사기 1건, 변호사법 위반 11건, 권력형 비리 13건, 이권개입 2건, 융자간여 3건. 여기에 온갖 성추문과 성폭행 의혹까지 더하면

최태민의 화려한 이력이 완성되죠.

아무튼 대선에 도전하는 박근혜를 알려면 그의 그림자 최태민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기때문에

지금부터 이 목사라고 하는 최태민은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태민

 

 


최태민은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최태민은 호적을 여러번 바꾼 전적이 있어요.

이름도 여러번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확실한 나이는 모르지만 1910년대라고 추정을 하고있습니다.


최태민의 기이한 인생역정을 살펴보자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앞잡이 황해도경 순사였던 최태민은 해방이후 검거를 피해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월남을 합니다.

이게 웃긴게 이 일본의 순사경력을 살려서 경찰이 됩니다. 그런데 최태민의 아버지는 독립유공자예요.

아들이 일본순사를 했다는게 이해가 잘 안가는데 그래서 경찰이 되기 위해 일본순사의 경력을 위조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망할 승만이가 조선인출신 일본경찰은 그냥 한국경찰을 시켜줬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아무튼


처음에 해방 이후 '상훈'으로 그리고 1951년 '봉수'로 바꾸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을 지내다가 종전 직후 1954년 김모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첫번째 부인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여성과의 추문을 몰고 다녀서 아내가 최태민을 간통 고소, 그 길로 도주하여 부산 금화사에 의탁해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다시 이름을 '퇴운'으로 바꿉니다.



그리고는 다시 1년 후에 돌아와 전 부인 임모여인과 재결합을 해요.

수사자료에 따르면 최태민은 과거에도 수차례 결혼과 동거를 했었는데 임모여인은 5번째 부인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리고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학교를 설립해서 교장으로 취임, 2년만에 그만 두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은 최태민은 승려였던 경험을 살려 불교협회의 간부가 됩니다.


그리고 1963년 5월에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이 되고 2년 뒤에는 천일창고 회사 회장으로 취임하는데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에 입건됩니다. 그러자 다시 도주를 하긔.

날다람쥐 돋는 도주실력bbb

도피생활을 이어가면서 '공해남'이라는 가명으로 활동을 하다가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습니다.

(종교도 뛰어넘는 행보. 참 멋져여. 박근혜랑 잘어울려요.)



자, 이렇게 천주교 세례를 받았는데 이 이후에 최태민은 종교 갈아타기도 모자라서 종교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충청도 계룡산에 들어가서 사이비 종교인 영세계를 창립하여 교주가 되는데 서울, 대전일대를 돌아다니며 종교사기를 벌이게 됩니다..

영세계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혼합한 종교라고 합니다.ㅋㅋㅋㅋ

아무튼 또 이 영생교 교주 시절에는 '방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별칭은 '원자경','칙사','태자마마'로 불렸습니다.

최태민이 영세계 교주였다는 사실은 '사이비종교 연구가'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고 있던 탁명환 소장이 신문에서 박근혜 옆에 있는 최태민을 보고 직접 찾아가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해요.





자, 이제 만나게 됩니다. 운명의 두 사람이.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게 75년 초의 일입니다.


육영수가 총탄에 피격된 직후죠. 이 때 벌서 최태민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어요.

그런데 야망이 대단했던 최태민은 돈을 번것 까지는 좋으나 사이비교주의 타이틀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그리하여 탄생한게 최태민 목사입니다. 드디어 종교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어요.

그리고 이때 이름을 '태민'으로 바꿉니다.


혹자는 안수를 받지않은 사이비 목사라고도 하고, 

혹자는 안수는 받았으나 그 안수해준 교회측이 사이비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어쨌든 확실한 것은 최태민은 기독교 공부를 한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최태민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목사질을 하며 주류에 편입하려고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74년 8월 15일, 국모라는 육영수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박정희도 좌절했지만, 가장 큰 슬픔을 느낀것은 장녀 (배다른 언니 박재옥이 있지만)박근혜였겠죠.


그렇게 의기소침해 하고 있던 박근혜에게 어느날 편지 한통이 날아듭니다. 발신인은 최태민 목사 라고 쓰여져 있었어요.







그럼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냐하면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밝힌 내용이라서 100%의 신뢰도를 자랑할 수는 없어도

한번 내용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육영수여사가 내 꿈에 나타나 여러가지를 알려주었다. 

육여사는 사망한게 아니라, 딸을 위해 자리를 비켜 준 것이다. 

어머니가 말하길, 딸을 한국의지도자 더 나아가서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비켜 준 것인데 내 딸은 우매해 이런 것을 잘 모른다. 

그러니 나 대신 근혜에게 나의 말을 전해 달라." 라는게 편지의 내용입니다.



현몽계시가 실린 기사



그리고 박근혜는 사람을 시켜 최태민을 초청해 그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박근혜에게 편지 내용과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는 개소리를 그럴듯하게 지껄이며 박근혜를 홀립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현몽계시'입니다.



(하지만 최태민이 유일하게 인터뷰한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 따르면 최태민은 이런 현몽계시에 대해 부정했다고 해요.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

박근혜도 '현몽설'에 대해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의 후광을 이용하여 여러 봉사단체를 만듭니다. 그리고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역시 박근혜의 후광을 과시하며 엄청나게 돈을 뜯어먹어요.

대기업에 가서 "나 최태민이다. 대한구국봉사단등 여러봉사, 선교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대통령 딸이 최대 후원자이고 이사로 있다. 후원해라." 

이렇게 썰을 풀면 기업이나 혹은 국회의원하고 싶어하는 인간들이 알아서 돈을 갖다 바치는거죠. 

처음에는 박근혜를 단체의 뒤쪽에 두었던 최태민은 어느순간부터 박근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최태민, 박근혜

 

 


'구국기도회'에 박근혜를 초대해 그 자리에서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구국선교단에서 구국여성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꿔요.

그리고 이 구국여성봉사단은 얼마 안있어 대한구국봉사단(총재 최태민)과 하나로 합치는데 그것이 바로 새마음봉사단입니다. 

(명예총재 최태민, 총재 박근혜, 이 단체에서 79년에 새마음 종합병원-이사장 박근혜- 을 개원합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들어서 문을 닫았어요.

어쨌든 이 새마음봉사단이 나중에 근화봉사단, 정수장학회, 등의 모태가 됩니다.) 

이렇게 박근혜가 자신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자 최태민의 비리와 전횡은 갈수록 심해집니다. 

그리고 점점 대담해졌어요. 

공금을 횡령하는 것은 물론이요, 장부를 조작하고, 심지어는 청와대에 직접 이권청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거죠. 

이렇게 되니 최태민에 대한 안좋은 소문이 당연히 나오게 되었고, 청와대 비서진들, 특히 친인척비리를 다루는 민정수석실은 비상이 걸립니다.




민정수석실은 최태민의 비리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즈음 의식있는 여러사람이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해 음양으로 노력을 했지만 

그 때 마다 박근혜의 최태민 감싸기로 최태민은 끈질기게 그의 생명력을 유지하죠.

드디어 민정수석실이 최태민의 비리를 조사하여 박정희에게 보고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불같이 화를 내리라 생각했던것과는 달리 박정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보고를 한 비서관에게 오히려 "니가 근혜한테 직접 얘기해라, 난 모르는걸로 하고..."라며 비서관을 돌려 보냅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박근혜에게 최태민의 비리를 보고했으나 오히려 박근혜는 박정희를 설득하기 바빴습니다.

최태민은 잘못이 없다는 것. 그래서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에요.


김재규는 중정부장이지만 그래도 나름 정의와 양심을 아는 인간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중 나름.)

그러니 김재규의 눈에 최태민이 눈엣가시였겠죠.

그리하여 이번에는 중정에서 최태민의 비리를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중정에서까지 최태민이 문제 있다는 보고가 올라가자 박정희는 참을 수 없어졌어요.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우스운 상황이 연출됩니다. 

최태민에게 문제가 있다면 법으로 해결하든지 1일 철권통치시대였으니 그냥 최태민을 다시는 박근혜 옆에 오지 못하게 전공 살려서 두드려 패든지 죽이든지 했으면 될텐데

박정희는 이상한 방법을 씁니다.

그게 바로 "친국"입니다. 


이 "친국"사건은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인데 그 이유가 그 만큼 보기드문일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친국"이라는데 뭐냐하면 조선시대처럼 왕이 잘못한 죄인을 직접불러

"네이놈! 네 죄가 뭔지 알렸다!, 사실을 고하지 않으면 주리를 틀어버릴테다."

뭐 이런 상황인거죠.




당시 최태민은 사석에서 '박근혜는 꼭두각시,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며 떠벌리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소문에 대해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 말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이냐?'며 불쾌해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청와대에서 "친국"이 이루어집니다.

이 자리에는 박정희, 최태민, 박근혜, 김재규, 그리고 중정의 최태민 수사담당 백광현 국장이 참가 했습니다.


박정희, 박근혜, 최태민



진짜 웃기지 않아요?

옆에서 김재규하고 백광현이 문서를 뒤적거리며 박정희한테 최태민에 대한 사실을 얘기하면 박정희가 최태민에게 사실이냐고 묻고

최태민은 또 바로 아니라면서 이리저리 처세술을 이용해서 피해가려고 애쓰고 옆에서 박근혜가 편을 들어주고

그 꼴을 보던 김재규가 또 뻥친다며 그 자리에서 닥달을 했다는 얘긴데 진짜 코메디가 따로 없어요. 

이 모든게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이뤄졌다는거죠. 이게 유명한 "친국"이라겁니다.



그럼 이 친국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지 않나요?

일단, 문제가 계속되자 검찰조사를 지키는 것으로 하는 대신 구속은 시키지 않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박근혜와 연루된 최태민이 구속됐다가는

박근혜에게 불똥이 튈지 몰랐기 때문이죠.

그러나 박정희의 엄명으로 박근혜와 최태민은 예전같은 사이가 되지는 못하게 되었어요.

이런 관계가 계속 지속 됐다면 아마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는 멀어졌을텐데 공교롭게도 79년 박정희가 죽자 박근혜는 다시 최태민을 찾게 됩니다. 

웰컴백.

그런데 박정희의 사망사건을 조사한 사람이 바로 전두환이었습니다.

그러니 김재규의 항소이유서에도 나와있는 최태민을 전두환이 그냥 두고볼리가 없었던거죠.



이학봉을 시켜 최태민조사를 지시한 전두환은 그의 비리 사실이 나오자 감금하고 강원도 삼청교육대에 끌려서 1년 6개월형을 때립니다.

(구속해서 감방으로 보내면 되는데 왜 강원도 군부대로 보냈을까요? 박근혜와 최태민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강원도로 보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가 청와대로 직접 전두환을 찾아가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소문도 들렸다고 해요. 

물론 이것에 대해서도 박근혜는 부인했습니다. 



같은 시기 박근혜는 당시 마약 복용으로 감호소에 갇혀있던 동생 박지만을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감옥에 있는 동생조차 면회 가지 않는 인물이 최태민 목사의 구명에 힘썼다는 소문이 돌면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게 된것이죠.

 

1년 6개월형을 받았던 최태민은 1년만에 풀려나게 되고 다시 박근혜 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최태민은 여전히 박근혜의 그림자가 되어 육영재단의 운영에 개입하게 됩니다.


심지어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까지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 운영에 개입하면서 

육영재단 직원들은 분노하게 되고 결국 파업과 농성으로 이어지고 이 일로 박근혜는 1990년 11월 15일 동생 박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깁니다.

당시 박근혜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며 "내가 누구에게 조종당한다는 것은 인격 모독"이라며 매우 불쾌해했다고 합니다.

계속 불쾌해하면서 곁에 두쟈냐~~

아무튼 이 글의 초반에 나왔던 박근령, 박지만의 편지사건 역시 같은 해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쨌든 최태민은 천수를 누리다 94년에 죽어요.

죽으면서 그가 그의 5명의 부인과 9명이나되는 자식들에게 남긴 재산은 수백억대였습니다.

그리고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의 5번째 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를 비서실장으로 삼으며 정계에 입문합니다.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입니다.

박근혜와 최태민 스캔들을 우려한 주변에서 정윤회를 멀리할 것을 지속적으로 건의하자 

비서실장 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박근혜를 위해 정윤회가 일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죠.





이런 의혹이 계속되는 건 박근혜를 만나기 전 무일푼에 가까웠던 최태민의 딸들이 현재 수백억원의 부동산 재벌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최태민은 6명의 부인으로부터 3남6녀 9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태민의 다섯번째 딸인 최순실은 29살이던 1985년 9월 미승빌딩 맞은편의 대지 357.8㎡(108평)를 임모씨와 공동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됩니다.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고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어요.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미승빌딩)을 지어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건물 시가는 200억 가량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에는 최순실의 남편이자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윤회가 대표이사인 (주)얀슨이 입주해있습니다.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 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으로 업종이 계속 변경되어 사업자등록이 되어있습니다.


얀슨 사무실 직원들은 얀슨의 주 업무가 미승빌딩 관리라고 말합니다.

1995년 정윤회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었고 건물 시가는 40억원 정도.





부동산 재벌인 최태민과 그 딸들은 원래부터 부자는 아니었습니다.

전세를 전전했고 사기행각을 지속적으로 벌일 정도로 생활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와 만나 구국선교단, 새마음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최태민의 부동산과 재산이 늘어났습니다.

최태민과 박근혜가 남녀관계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길은 없습니다.

증명할만한 어떠한 물증도 없구요.


문제는 사기, 횡령, 사이비 종교활동을 한 인물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이 여전히 엮여있다는 것만으로도 박근혜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겁니다.


박근혜는 여전히 최태민이 깨끗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직도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면서 대권에 도전한다니 어이가 없을뿐.

박근혜가 최태민목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위 내용에서 거의 다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월간조선이 2007년 대선전에 이명박/박근혜 양강대결로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검증절차의 단계로 박근혜에게 보낸 공개질의 내용중에 하나입니다..



질문) 고 최태민 목사는 박후보에게 어떤분이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답)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힘들었을 때 내가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 고마운 분입니다. 





박근혜는 진정 대통령의 후보로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최태민의 범죄 사실과 최태민 및 그 자식들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해야 합니다.

박근혜와 최태민 사이의 사생아 관련 이야기는 정확성이 부족해서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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