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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PD수첩이 `여성 혐오`를 보는 방식

음바페여친 2015. 8. 13. 18:47

[문화비평]PD수첩이 ‘여성 혐오’를 보는 방식

인터넷에 떠도는 한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다. 그는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이전까지는 짐작하지도 못했던 무례와 불손을 경험했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닥치고 가는 사람은 몇 배로 늘었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모두 자기 앞으로 새치기하는 느낌이었단다. 대신 실수로 남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남자들은 때릴 듯이 눈을 부라리고 쳐다봤다고 한다.

“내가 여성이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봤다. 출산이나 육아, 유리천장이나 낮은 임금 등은 일단 제쳐놓고, 하루 일과를 머릿속에서 그려봤다. 운전하다가 봉변을 당하는 모습이 떠올랐고, 밤에는 택시를 타기도 꺼릴 듯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간 지나가는 영감님에게 호통을 당할 수도 있겠다.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녀야 하는 내 모습이 상상된다. 별로 재미없다.

지난 4일 MBC <PD수첩>은 왜 ‘여혐(여성혐오)’이 확산되었는가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남성도 여성도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애매한 당위론이었다. 이상한 해결책이다. <PD수첩>은 (이념으로서의) 가부장주의는 건재하지만 (실천적) 가부장주의는 실현되기 어려운 모순을 지적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그리고 이 지적은 여혐이 남-여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문제임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남성이 가진 가부장적 전통과 환상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술 취한 남성이 젊은 여성을 희롱할 때, 이 문제의 원인을 분별력 없는 치한에서 찾아야지 괜히 여성의 옷차림이나 죄 없는 술에서 찾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가부장적 사고 때문에 괴롭다면 그 사고의 주체가 고쳐야 한다.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를 포함한 보통의 남성들은 여성들을 둘러싼 ‘일상적 폭력’을 이해하기 어렵다. “데이트 비용은 남성에게 전가하면서 비싼 선물을 원하는 ‘김치녀’로 인해 쌓인 분노와 고통”과 “실제로 욕을 듣고, 뺨을 맞고, 심지어 강간과 죽임을 당하는 고통”이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는 여성이 사흘에 한 명꼴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그런데도 ‘여혐’ 남성들은 <PD수첩>에서 소개한 ‘김치녀’들을 보며 “살인 충동을 느낀다”라고 거리낌 없이 댓글을 달고, 텔레비전은 이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말 끔찍한 일 아닌가.

<PD수첩>은 오랜 기간 거악과 부조리를 폭로하고, 감춰진 그늘에 빛을 비추고, 힘없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우리나라 방송저널리즘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워왔다.

그런데 지난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편은 공익을 위한 내용도 약자를 보듬는 내용도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이번 ‘여혐’ 편은 “많은 시청자들이 왜 <PD수첩>에 (혹은 MBC에) 등을 돌렸는가”를 보여준 작품이다. ‘여혐’ 현상이 사소하니 다룰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왜 이 현상의 이면에 켜켜이 쌓여있는 권력관계와 폭력성, 구조와 역사의 모순들을 들춰내지 못했을까? 여성도 4~8주 군사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을 ‘여혐’의 해결방안으로 제시한 목소리도 나왔다. 코미디다. 냉철한 제작진은 여성의 의지와 무관한 군대 문제가 ‘여혐’의 원인이어서도 해결책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했어야 한다.

<PD수첩>은 ‘여혐’의 주체인 남성의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들려주다가 아주 잠깐 ‘여혐’의 대상인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 실제 참여했던 ‘메르스 갤러리’ 이용자들의 후기를 보면 제작진들의 인터뷰는 결코 ‘저널리스틱’했던 것 같지 않다.

인터뷰 원문을 보면, 담당 PD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집요하게 심문하는 검사의 역할을 자임한다. 인터뷰가 아니라 인터뷰이와의 말싸움이다. 말실수 하나를 얻어내어 방송에 활용하겠다는 ‘작전’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이다. ‘여혐’의 책임이 여성들에게(도) 있으니 이를 (부분적으로라도) 시인하라는 강압으로 느껴진다. 제작진들은 정말 ‘여혐’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강자한테 혐오를 표출할 수가 없어요. 약자한테 표출하는 감정이죠. (…) 여성뿐만 아니라 성적 소수자, 지역적으로 특정적 사람,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불안정하고 불안한 감정을 투사해서 그걸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는 거예요.” 방송 중 인용되었던 이나영 교수의 발언이다. <PD수첩>이 정말 ‘여혐’을 지금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회문제’로 여겼다면, 이 발언이 진정한 출발점이어야 했다. ‘여혐’은 결국 약자 대상의 폭력이라는 ‘남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http://m.khan.co.kr/view.html?med_id=khan&artid=201508112129025&code=990100


수요일자 경향신문 칼럼인데 공감돼서 파왔긔!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멸치국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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