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저녁 있는 삶] ① 벼랑에 선 맞벌이들
가족식사는 ‘연례행사’…도우미 월급만 210만원
아내도 손꼽히는 대기업에서 일한다. 아내의 직장은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75제’를 실시하지만 5시에 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탓에 오히려 ‘아줌마’ 구하는 일만 어려웠다. 오전 아줌마, 오후 아줌마 2명을 부르다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동안 자유시간을 드리는 조건으로 겨우 ‘전일 아줌마’를 구했다. 칼퇴근을 하지 못하는 부부는 아줌마를 밤 9시까지 붙들어놓는다. 아이들과 함께 온 식구가 모여 저녁밥을 먹는 건 1년에 두세번 있을까 말까하다. 9시를 맞추는 것도 힘들어 평일에 한두번 근처에 사는 어머니께 와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처가가 지방에 있는 게 야속한 순간이다.
둘이 합하면 대한민국 소득 상위 10%에는 들 것 같은데, ‘보육비’ 탓에 체감소득은 훨씬 낮다. ‘아줌마’ 월급만 한달에 210만원이다. 1000여만원짜리 적금이 유일한 저축인데, 전세값이 폭등하고 있어 걱정이다.
세 아이 모두 인공수정을 통해 출산했다. 불임치료를 받으려고 날마다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데 퇴근이나 휴가마저도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중도에 시술을 포기할 뻔했다. 병원이 아내 회사 근처에 있지 않았다면, 둘 중 하나는 회사를 그만둬야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야간근무가 3분의2…답 없는 부부싸움만
5톤 트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남편은 새벽4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 퇴근한다. 그렇게 일하는데도 한달에 생활비로 손에 쥐는 건 200만원 남짓이다. 1억5000만원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이자로만 70만원이 들어갔다. 맞벌이를 해야했다. 결혼 전 무역회사에서 경리업무를 보며 능력도 인정받았지만 경력 단절 여성들이 재취업할 수 있는 곳은 식당 아니면 공장이었다. 그래도 대형마트는 ‘레벨’이 괜찮은 직장이었다. 오갈 데 없는 아줌마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워서 열심히 일했다. 낮 12시에 출근해 자정에 퇴근하거나 오전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8시를 넘기는 등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는 게 다반사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퇴근하지 않는 아빠·엄마를 기다리며 저희끼리 끼니를 때웠다. 외로운 저녁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자극적인 비행으로 빠지기도 했다. “애들 관리를 이렇게 할 거면 당장 때려치워라”, “당신이 돈 많이 벌어오면 될 거 아니냐” 답이 없는 부부싸움도 잦았다.
지난 6월 노조가 생기면서 12시간까지 노동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달에 3분의2 정도는 야근을 해야 한다. 학령기 자녀를 둔 여직원을 배려하는 제도나 근무표 작성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돈 때문 아빠 노릇 포기…이제서야 후회가 된다
컨테이너 트럭 기사인 민연홍(44)씨는 해 뜨기 전에 일을 나간다. 차가 밀리기 시작하면 기름값이 많이 들기 때문에 차가 없는 새벽에 달려야 한다. 다음날 오전 운송할 컨테이너를 싣기 위해 오후 4~5시에 컨테이너 터미널에 들어가면 밤 9시~10시께에야 나올 수 있다. 터미널 시설만 개선돼도 2~3시간은 일찍 퇴근할 수 있겠지만 뜻대로 되기 어려운 일이다. 일감을 조절할 수도 있지만, 두 아이 사교육비만 한달에 100만원이 들어간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아빠보다 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일감을 받지 못하면 불안해진다.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모른다. 녹초가 돼 퇴근하면 “아빠 놀아줘”, “아빠, 이거 해줘”라며 조르는 아이들이 귀찮기만 했다. 사춘기 때 등 한번 두들겨 준 기억이 없는 아들은 아빠를 서먹해한다. “돈을 덜 벌더라도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냈어야 하는 건가요?” 그는 이제야 후회가 된다.
아빠의 빈 자리는 엄마가 직장을 포기하면서 채워야 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던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뒤 일을 그만뒀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다시 어린이집에 취직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지만 ‘칼퇴근’은 아니다. 미혼 교사들은 직장에 남아 하는 일을 아내는 집에 들고와서 해야 한다.
TV 보며 기다리는 애들…나 때문에 불행한 걸까
육아휴직을 마치고 4월에 복직했다. 기초연금 지급이 시작되던 7월에는 매일 밤 11시까지 일을 해야했다. 지금도 8시, 9시는 기본이다. 6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있다보면 동생들과 함께 집을 지키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집에 있는 게 무섭다”며 울먹거리는 딸을 달래다보면 같이 전화기를 붙들고 울기가 일쑤다. 남편도 공무원이지만 칼퇴근을 못한다. 남편은 유독 회식 자리가 많다. 남편과 시간을 맞출 수 없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일한다. 아이들을 위한 아무런 시설이 없는 직장에서 아이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군청 주최 행사가 있는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행사장에 차출된다. 남편과 최대한 시간을 조정해보지만 꼭 1~2시간 정도는 아이들끼리만 있게 된다. 아파트 11층에 사는 게 이때만큼은 소름돋을 정도로 후회가 된다. 장난이 심한 두 아들이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몸서리 처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다둥이 가족을 위한 수많은 혜택 중에 정작 중요한 이런 배려는 빠져있다. 내가 일을 해서 모두가 불행한 건 아닌가,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만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냥 눈물이 난다.
“아빠랑 밥 먹고 먼저 자”…입에 달고 주말도 일해
김은주(43)씨는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휴대전화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공장이 바쁘게 돌아갈 때는 아침 8시에 출근해 새벽 2~3시까지 일하고 다시 정상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물량이 줄면 비정규직은 퇴사시키고 정규직들로만 같은 패턴으로 일했다. “아빠랑 밥 먹고 먼저 자”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밥 먹듯이 했다. 양계장을 하는 남편이 출퇴근에서 자유로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생산관리직이지만 여전히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왕복 2시간에 이르는 출퇴근 시간을 감안하면 집에 머무는 것은 10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밤 8시 퇴근도 어렵다. 생산라인이 주 7일 24시간 주야 맞교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말에도 일한다. 집안일 등이 있을 때 일요일에만 ‘미리 허락을 받아’ 가끔 쉴 뿐이다. 말 그대로 일주일 내내 가족들 얼굴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함께 여행을 간 게 언제적 일인지조차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래도 일을 그만둘 수 없는 건 연봉 3400만원 때문이다. 하루 12시간, 한달을 꼬박 일하고도 한달에 200만원을 못 받는 ‘생산직 언니야’들에 견주면 그래도 고액연봉자에 속한다. 쉬는 날 없이 사는 게 갑갑하지만 “엄마 힘들게 일하는데 학원 다니지 말까”라고 묻는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24시간 운영되는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한 어린이가 보육교사의 품에 안긴 채 현관 밖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데리러오지 못하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부모 모두 밤샘 근무를 하는 원아들은 귀가하지 못하고 어린이집에서 잠을 청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가족식사는 ‘연례행사’…도우미 월급만 210만원
아내도 손꼽히는 대기업에서 일한다. 아내의 직장은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75제’를 실시하지만 5시에 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탓에 오히려 ‘아줌마’ 구하는 일만 어려웠다. 오전 아줌마, 오후 아줌마 2명을 부르다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동안 자유시간을 드리는 조건으로 겨우 ‘전일 아줌마’를 구했다. 칼퇴근을 하지 못하는 부부는 아줌마를 밤 9시까지 붙들어놓는다. 아이들과 함께 온 식구가 모여 저녁밥을 먹는 건 1년에 두세번 있을까 말까하다. 9시를 맞추는 것도 힘들어 평일에 한두번 근처에 사는 어머니께 와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처가가 지방에 있는 게 야속한 순간이다.
둘이 합하면 대한민국 소득 상위 10%에는 들 것 같은데, ‘보육비’ 탓에 체감소득은 훨씬 낮다. ‘아줌마’ 월급만 한달에 210만원이다. 1000여만원짜리 적금이 유일한 저축인데, 전세값이 폭등하고 있어 걱정이다.
세 아이 모두 인공수정을 통해 출산했다. 불임치료를 받으려고 날마다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데 퇴근이나 휴가마저도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중도에 시술을 포기할 뻔했다. 병원이 아내 회사 근처에 있지 않았다면, 둘 중 하나는 회사를 그만둬야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야간근무가 3분의2…답 없는 부부싸움만
5톤 트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남편은 새벽4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 퇴근한다. 그렇게 일하는데도 한달에 생활비로 손에 쥐는 건 200만원 남짓이다. 1억5000만원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이자로만 70만원이 들어갔다. 맞벌이를 해야했다. 결혼 전 무역회사에서 경리업무를 보며 능력도 인정받았지만 경력 단절 여성들이 재취업할 수 있는 곳은 식당 아니면 공장이었다. 그래도 대형마트는 ‘레벨’이 괜찮은 직장이었다. 오갈 데 없는 아줌마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워서 열심히 일했다. 낮 12시에 출근해 자정에 퇴근하거나 오전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8시를 넘기는 등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는 게 다반사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퇴근하지 않는 아빠·엄마를 기다리며 저희끼리 끼니를 때웠다. 외로운 저녁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자극적인 비행으로 빠지기도 했다. “애들 관리를 이렇게 할 거면 당장 때려치워라”, “당신이 돈 많이 벌어오면 될 거 아니냐” 답이 없는 부부싸움도 잦았다.
지난 6월 노조가 생기면서 12시간까지 노동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달에 3분의2 정도는 야근을 해야 한다. 학령기 자녀를 둔 여직원을 배려하는 제도나 근무표 작성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돈 때문 아빠 노릇 포기…이제서야 후회가 된다
컨테이너 트럭 기사인 민연홍(44)씨는 해 뜨기 전에 일을 나간다. 차가 밀리기 시작하면 기름값이 많이 들기 때문에 차가 없는 새벽에 달려야 한다. 다음날 오전 운송할 컨테이너를 싣기 위해 오후 4~5시에 컨테이너 터미널에 들어가면 밤 9시~10시께에야 나올 수 있다. 터미널 시설만 개선돼도 2~3시간은 일찍 퇴근할 수 있겠지만 뜻대로 되기 어려운 일이다. 일감을 조절할 수도 있지만, 두 아이 사교육비만 한달에 100만원이 들어간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아빠보다 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일감을 받지 못하면 불안해진다.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모른다. 녹초가 돼 퇴근하면 “아빠 놀아줘”, “아빠, 이거 해줘”라며 조르는 아이들이 귀찮기만 했다. 사춘기 때 등 한번 두들겨 준 기억이 없는 아들은 아빠를 서먹해한다. “돈을 덜 벌더라도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냈어야 하는 건가요?” 그는 이제야 후회가 된다.
아빠의 빈 자리는 엄마가 직장을 포기하면서 채워야 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던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뒤 일을 그만뒀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다시 어린이집에 취직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지만 ‘칼퇴근’은 아니다. 미혼 교사들은 직장에 남아 하는 일을 아내는 집에 들고와서 해야 한다.
TV 보며 기다리는 애들…나 때문에 불행한 걸까
육아휴직을 마치고 4월에 복직했다. 기초연금 지급이 시작되던 7월에는 매일 밤 11시까지 일을 해야했다. 지금도 8시, 9시는 기본이다. 6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있다보면 동생들과 함께 집을 지키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집에 있는 게 무섭다”며 울먹거리는 딸을 달래다보면 같이 전화기를 붙들고 울기가 일쑤다. 남편도 공무원이지만 칼퇴근을 못한다. 남편은 유독 회식 자리가 많다. 남편과 시간을 맞출 수 없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일한다. 아이들을 위한 아무런 시설이 없는 직장에서 아이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군청 주최 행사가 있는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행사장에 차출된다. 남편과 최대한 시간을 조정해보지만 꼭 1~2시간 정도는 아이들끼리만 있게 된다. 아파트 11층에 사는 게 이때만큼은 소름돋을 정도로 후회가 된다. 장난이 심한 두 아들이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몸서리 처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다둥이 가족을 위한 수많은 혜택 중에 정작 중요한 이런 배려는 빠져있다. 내가 일을 해서 모두가 불행한 건 아닌가,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만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냥 눈물이 난다.
“아빠랑 밥 먹고 먼저 자”…입에 달고 주말도 일해
김은주(43)씨는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휴대전화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공장이 바쁘게 돌아갈 때는 아침 8시에 출근해 새벽 2~3시까지 일하고 다시 정상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물량이 줄면 비정규직은 퇴사시키고 정규직들로만 같은 패턴으로 일했다. “아빠랑 밥 먹고 먼저 자”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밥 먹듯이 했다. 양계장을 하는 남편이 출퇴근에서 자유로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생산관리직이지만 여전히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왕복 2시간에 이르는 출퇴근 시간을 감안하면 집에 머무는 것은 10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밤 8시 퇴근도 어렵다. 생산라인이 주 7일 24시간 주야 맞교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말에도 일한다. 집안일 등이 있을 때 일요일에만 ‘미리 허락을 받아’ 가끔 쉴 뿐이다. 말 그대로 일주일 내내 가족들 얼굴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함께 여행을 간 게 언제적 일인지조차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래도 일을 그만둘 수 없는 건 연봉 3400만원 때문이다. 하루 12시간, 한달을 꼬박 일하고도 한달에 200만원을 못 받는 ‘생산직 언니야’들에 견주면 그래도 고액연봉자에 속한다. 쉬는 날 없이 사는 게 갑갑하지만 “엄마 힘들게 일하는데 학원 다니지 말까”라고 묻는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15키로나찌다니 원글보기
메모 :
'ㄴ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말기 암` 아빠와 세 딸의 마지막 춤 감동 사연 (0) | 2014.10.14 |
---|---|
[스크랩] `삼성 반토막`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걱정된다 (0) | 2014.10.13 |
[스크랩] "박근혜 정부 국민들의 카톡 실시간 들여다본것 확인" (0) | 2014.10.13 |
[스크랩]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방학 갑니다… 경기 초중고 일부 시행 (0) | 2014.10.13 |
[스크랩] 대학생 "가장 불신하는 집단 1위는 정치인"..85.3% (0) | 2014.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