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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에서 저평가된 왕

음바페여친 2021. 5. 20. 00:41

 

 

 

문종(文宗, 1414년 11월 15일 (음력 10월 3일)

조선의 5대 왕이며 그 세종대왕의 장자이다.

대중매체에서는 수양대군을 포스넘치는 빌런으로 만들기 위해

문종이 동생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그저 주변에 아들인 단종을 잘 부탁한다며 힘없이 죽어가는,

아무것도 못하고 단명한 유약한 왕처럼 묘사가 된 작품이 많이 있으나

사실은 그와는 완전히 다르다.


 

1. 수양대군은 문종이 떴다 하면 기도 못펴고 쭈그러져 있었다.


실제로 실록에 따르면 영화 ‘관상’에서의 포스넘치는

수양대군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문종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싸바싸바하고 다녔다는 기록들이 있으며


문종은 조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통성을 가진 왕이었기에 (선대왕이 직접 정한 적자 + 정실부인이 낳은 장자)

수양대군이 찬탈은 커녕 문종 생전 눈치보느라 바빴을 것이다.

 

2. 문종은 이성계의 증손자답게 군사적지식에 조예가 깊었다.


우리가 아는 조선의 화약무기 화차(신기전)의 설계와 운용방법이 바로


문종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약병기의 설계도가 바로 문종화차이다)

4군 6진을 재정하고 군제를 개편하여 병력을 증강하였다

화차를 직접 제작했던 위의 일화처럼 하루 죙일 무기제작을 고민하고

무기를 너무 좋아하는 화력덕후였어서 오죽하면 신숙주가

‘즈어언하 제발 무기 개발좀 그만하세요 왕이 무기만 보니까 백성들까지 나서서 하겠다고 그러잖아욧!’

라고 충언아닌 충언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3. 문종은 조선 역사상 최고의 미남 왕 중 한명이다

비교적 딱딱한 실록의 표현방법 중에는 드물게 문종의 외모에 대해

‘매우 잘생겼다’ 라는 표현이 쓰였으며

체격도 크고 장대하며 수염이 매우 풍성하여 관우와 같은 풍모를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사신들이 문종이 열었던 연회에 참석해 하루 종일

문종의 화려한 외모에 대한 얘기만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유약한 문종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실제 기록이 아닐수 없다.

 

4. 세종대왕 후반기의 업적은 문종에 의해 시작된 것들이 많다.


세종대왕은 실제로 집권 말기에 당뇨때문에 시력을 많이 잃어 국정을 직접 살피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한다.

이때 세자였던 문종에게 대리청청(임금의 업무를 대신함)을 재가하여

대신 국정을 보게 했는데 이때가 조선 과학의 르네상스 시대로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시기이다.

장영실이 만들어낸 측우기의 제작아이디어가 이 세자시절 문종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이밖에도 군법 농법 조세걷는 시스템의 리메이크까지 세종말기 정치 업적중에는

문종이 대리청정받아 정치할때 이뤄진 것들이 많다.




여담

사실 세자시절 문종이 저렇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거 몰두하면서

지낼수 있었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 세종과 문종의 조합이 역대급이었기 때문이다

대충 요약하자면

조선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
+
조선 역사상 가장 정통성이 강력한 대리청정 받은 세자

라는 조합이었으니 감히 그 누가 세자저하께서 뭐 하고 싶다는데

태클을 걸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문종이 10년만 더 살았어도 조선시대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군으로 통하는 문종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들이었다.



그가 만약 오래 살았다면 조선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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