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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카카오톡 고양이 ‘네오’는 된장녀?

음바페여친 2015. 9. 7. 16:02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채팅을 하다가 웃긴 얘기가 나왔을 때 “ㅋㅋㅋㅋ”로는 전할 수 없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런 때면 저는 토끼탈을 쓴 단무지 캐릭터인 ‘무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바닥에 쓰러져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즐겨 보냅니다. 때때로 구구절절 쓴 백 개의 글자보다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하나의 스티커가 감정을 잘 전달하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카톡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하느라 바빠서 모임에 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바쁘게 일하는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과 곁들여 보내고 싶었는데, 고양이 네오와 강아지 프로도의 직장생활을 표현한 ‘오피스라이프’ 테마 스티커 16종에는 저의 상황에 들어맞는 여성 캐릭터 이모티콘이 없었습니다.

 

▲ 카카오프렌즈 '오피스라이프' 이모티콘 스토어 갈무리.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모두 넥타이를 맨 남성 강아지 캐릭터 프로도의 몫이었습니다. 프로도는 착실한 직장인입니다. 눈이 빠져라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하고 쏟아지는 업무 전화에 괴로워하며, 프레젠테이션도 척척 해내고 야근도 합니다. 또 다른 업무라고도 할 수 있는 회식에 가서 탬버린도 치고 취해서 전봇대 옆에서 잠들고는 다음날 숙취와 피곤에 찌들어 다시 출근도 하고요.

 

반면 여자 고양이 캐릭터 네오는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한다고 보기엔 어딘가 어색합니다. 네오는 아침 만원 전철에서도 명품백을 사수하며 출근하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자리 청소, 점심 메뉴 고민, 택배를 받으며 근무 시간을 보냅니다. 네오는 야근하는 대신 6시를 10분 남긴 벽시계를 보며 퇴근할 궁리를 하고, 퇴근 후에는 요가도 하고 쇼핑과 휴식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 카카오프렌즈 '캠퍼스라이프' 이모티콘 스토어 갈무리.

저의 ‘최애캐(최고로 애정하는 캐릭터의 준말)’인 네오가 된장녀이자 불성실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낌과 동시에 다른 테마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캐릭터들의 대학생활을 그린 ‘캠퍼스라이프’ 테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학생인 프로도는 머리를 쥐어짜며 열심히 공부하고 알바도 척척 해내며 해외여행을 가는 진취적인 모습이고, 여학생인 네오는 공부하며 졸다 벌떡 깨고 쪽지를 붙인 음료를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이 주로 그려졌습니다. 불성실한 대학 시절을 거친 네오가 사회 생활도 대충 하게 된 걸까요?

 

캐릭터들에게 편견 섞인 성역할을 안긴 것은 라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라인의 남자 캐릭터 문의 직장 생활을 그린 ‘샐러리맨 문대리’·‘직딩 문대리의 분투기’ 스티커에서 문은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원 전철을 타고 힘겨운 출근을 하고 눈에서 불이 나도록 바쁘게 일합니다. 가끔은 졸고 상사한테 혼나기도 하지만 동료들과 서로 위로하고 울기도 하면서 꿋꿋이 회사생활을 이어나갑니다. 회식에서 음주가무를 견딘 후 택시를 타고 파김치가 돼 귀가하는 모습은 카톡의 프로도와 같네요. 반면 여자 캐릭터인 토끼 코니의 직장 생활을 그린 ‘직장 여성코니의 회사 생활’ 스티커에서 코니는 업무 외의 일로 하루가 꽉 차있다는 점에서 카톡 레오와 비슷한 생활을 합니다. 문이 열심히 일하는 스티커는 5장 이상인 반면 코니가 열심히 일하는 스티커는 야근하는 스티커 단 한 장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코니는 상사가 보는 앞에서 거울을 보고 근무 시간에 셀카를 찍고 상사 눈치를 보며 칼퇴근을 합니다. 코니의 회사가 유독 회식이 없는 곳인 걸까요? 코니는 퇴근 후 데이트와 쇼핑, 목욕과 미용을 즐기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냅니다.

 

▲ 라인 스티커샵 '직딩 문대리의 분투기'· '샐러리맨 문대리'· '직장여성 코니의 회사 생활' 갈무리

두 메신저가 전체 캐릭터를 성차별적인 시선으로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제가 예로 든 특정 테마 스티커와 이모티콘은 모두 유료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면 되잖아’라고 하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극우 성향 온라인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여성 혐오 정서가 퍼지고 있는 가운데 이런 스티커들이 ‘여직원은 회사에서 업무 외 일로 허송세월 한다’→‘여직원은 일을 안 한다’→‘여성을 고용하면 회사 손해다’ 같은 근거 없는 편견을 확산시키지는 않을까요? 나아가 이런 편견이 모여 취업시장에서 여성지원자에 대한 불이익으로 나타나거나 직장에서의 성차별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과장인가요? 또한 이런 성차별적인 인식은 개인적인 성향을 이유로 회식 참여를 꺼린다거나 야근하는 것이 싫은 남성들한테도 족쇄로 작용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카카오톡에 따르면 카톡 전체 사용자는 2015년 1분기 기준 4820만 명입니다. 국내 이용자만 3800만 명이구요, 라인은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이용자는 1400만 명이지만 일본과 대만에서 흥하고 있어 전체 이용자가 2억 명이 넘습니다. 캐릭터 스티커가 메신저의 중심 기능은 아니지만 이토록 많은 사용자들이 쓰는 만큼 좀 더 사회적인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도 남성 만큼 열심히 일하니까요. 이제 야근하는 네오, 눈에서 불꽃 튀게 일하는 코니, 퇴근 후 휴식을 즐기는 프로도도 보고 싶습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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