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을 갓 넘긴 1977년 2월. 서울의 한 여대를 갓 졸업해 전남 곡성의 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을 앞둔 그는 그야말로 100점짜리 딸이자 예비 신붓감이었다. 하지만 서울 소공동 옛 산업은행 건물에서 ‘여성중견행원 원서교부’라는 문구를 맞닥뜨린 이후 그는 200점짜리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75년 유엔이 ‘여성의 해’를 제정한 직후여서 한일·제일·상업·조흥·서울신탁 등 5대 시중은행과 산업·기업·한국은행이 대졸 여성 채용에 나섰다. 여성 은행원 하면 여상 출신 창구직원이 고작이던 시절 그는 남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 37년 6개월이 지난 이달 말 산업은행에 입행한 대졸 여성 행원으로는 처음으로 정년퇴임하는 김세진 산업은행 강남 마케팅 센터장(60·사진) 얘기다.
전체 은행권에서도 그의 퇴임은 상징적이다. 여성금융인 모임인 여성금융인네트워크는 21일 모임을 하고 김 센터장에게 공로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입행 군번’이 1978년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에게 김 센터장은 특별한 멘토였다. 여성 행원이 ‘은행원’이기에 앞서 ‘여자’로 치부되던 시절 김 센터장과 권 행장은 ‘은행원’이 되자고 다짐했던 동지다. 김 센터장이 산업은행 잠실점장을 하던 1999년 권 행장이 오금동지점장이었다.
신입 행원 시절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 자체를 주지 않으려 하는 선배들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이 셀 수 없다. 1997년 초 각각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는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그는 집 근처 강남지점 발령을 회사에 요청했다. 하지만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다. 외환담당 과장이었던 그의 퇴근은 영국과 호주를 비롯한 외국 사무소와의 전화연락 탓에 밤 9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외환위기로 5000만달러에 달하는 신용장(L/C) 대금 지급을 인수은행이 거절했을 때는 그야말로 ‘전시’였다.
1년에 1명만 받을 수 있는 ‘올해의 산은인’ 상을 받고도 승진에서 누락된 그는 인사담당 임원을 직접 찾아갔다. 1999년 1월 그는 산업은행 최초의 지점장(잠실지점장)이 됐다. 그는 이제 300점짜리 꿈에 도전한다. 후배인 권선주 행장처럼 행장은커녕 임원도 못 했지만 37년 6개월의 노하우를 살려 저소득층 대학생을 비롯한 금융취약계층 멘토링으로 제2의 인생을 펼쳐나가기로 한 것.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길을 열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사회에서 혜택을 받은 몇 안 되는 여성으로서의 감사함이 더 크다”며 “자식과도 같은 젊은 금융취약계층이 경제적으로 덜 다치면서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능력과 경험을 쏟는 일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석우 기자]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39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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