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고 싶다는 인류의 꿈은 현실이 됐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는 “전 세계 100세 이상 인구가 2030년 3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한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2045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사상 최초로 15세 이하 인구를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나라는 이 속도가 더 빠르다. 고령화 메가트렌드에 주목하는 금융회사들은 은퇴인구를 위한 맞춤형 저축상품 개발, 헬스케어 기업 투자에 여념이 없다.
그런 금융회사들은 한편으로 ‘장수리스크’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경제력과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명 연장은 축복이라기보다 재앙이라는 인식이 점점 확고해진다. 초고령 시부모를 부양하는 고령 며느리들의 괴로움은 논문으로 학계에 고발됐다. 동시에 손자녀(손자·손녀) 육아로 노인의 신체적·경제적 괴로움이 가중돼 실버산업 성장세가 예상에 못 미친다는 분석도 나왔다.
◇“본인도 환자인데, 어떻게 노인을”=“딸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요…이사 때문에 어머니께서 한 달 정도 가 계셨는데, 시누이가 안 데려간다고 전화로 욕하고 난리가 났었어요.” 30일 한국노인복지학회의 ‘장기요양보호 시부모를 돌보는 며느리의 경험’ 논문에 따르면 일상생활이 힘든 고령의 시부모를 부양하는 며느리들은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과 다양한 신체적·재정적 부담을 겪고 있었다. 삼육대 사회복지학과 이민숙 교수와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양소남 교수가 8∼45년간 시부모를 부양한 며느리 8명을 장기간 관찰해 공통적으로 얻은 결론이다.
이들은 결혼과 동시에 시댁에 들어가 시부모와 동거했고,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부양 의무를 진 사례였다. 며느리들은 다른 가족 구성원의 외면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기만 했다. 요양보호시설 입소를 고려했다는 것만으로 비난을 받았고, 스스로 불효자라는 죄의식을 느꼈다. 친정에 이혼 고민을 호소해도 “어렵더라도 결혼생활을 인내할 것”을 설득 받았고, 결국은 “나 하나 희생하면 가정이 평화롭겠지”하고 생각했다.
더 큰 문제는 부양기간 장기화로 며느리들도 고령이 돼 건강과 경제력이 나빠진 데 있었다. 8명의 평균연령은 51세로 고령화의 초입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한 며느리는 병원에서 “본인도 환자인데 어떻게 노인을 돌보느냐”는 담당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다른 며느리는 “환자인 시부모 부양에 매달리다 보니 경제력이 없어지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육아휴직 된다면 손주 안 보고파”=부양에 시달리는 고령 며느리들이 있는가 하면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노인들은 손자녀 육아에 괴로움이 가중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확대와 노인 건강 증진은 조부모 육아라는 신풍경을 낳은 지 오래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510만 가구 가운데 자녀 육아를 조부모에 의지하는 가구가 절반에 이른다. 조부모의 체력 수준을 고려해 편리성을 강화한 육아용품 시장이 따로 형성될 정도다.
손자녀 육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노년층은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삶의 질이 떨어진다. 지난해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300가구를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은 주당 평균 5.6일을 양육에 쏟고 있었다. 주 5일 이상 손주를 돌본다는 노년 응답자가 99%, 주 6일 이상은 48%였다. 일평균 양육 시간이 9∼11시간에 달하는 응답자가 46%, 12시간 이상은 22%였다.
지난해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맞벌이 가구의 조부모 4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태는 더 충격적이다. 72.5%의 응답자가 “육아휴직제, 탄력근무제 등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손자녀 양육을 그만두겠다”고 토로했다. 61.3%는 손자녀를 돌볼 때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답했고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응답한 비율이 60.5%, “돌봄시간이 너무 길다”는 이들은 49.8%였다.
여유를 잃은 조부모들의 삶은 미래 유망 산업이라는 실버산업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하나대투증권 이영곤 연구원은 “노년층의 시간적·경제적 여력이 감소하고 있어 실버산업 기대치를 조정해야 한다”며 “금융 및 자산관리 서비스 시장 확산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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