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엔하위키
개요 ¶
숙청 ¶
1993년 당시 김영삼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하나회 출신인 서완수 기무사령관에게 "앞으로는 대통령과 독대하지 말고 국방장관을 통해 보고하라"고 말했다. 한편, 동년 3월 5일 육군사관학교 49기 졸업식 연설에서 국군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아주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말을 통해 에둘러서 군을 엎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영삼이 본격적인 숙청에 들어간 건 취임 11일째인 1993년 3월 8일. 이 순간까지 군 수뇌부는 물론 청와대 비서진들까지도 김영삼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다. 김영삼은 몇몇 최측근들과 일을 의논하다 3월 6일 오후 늦은 시각 국방부 장관 권영해(육사 15기)를 3월 8일 오전 7시 30분까지 오라고 한후 당일 독대했다. /"군인들은 그만둘 때 사표를 제출합니까?"/ 라고 김영삼이 묻자 권 장관은 /"군대엔 사표 내는 일 없이 인사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각오가 언제나 돼있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영삼이 /"아 그래요. 그럼 됐구만"/이라고 말하더니 /"내가 육참총장하고 기무사령관을 오늘 바꾸려고 합니다"/ 라고 선언했다. 장관이 극비리에 육군본부, 기무사, 수방사, 특전사 등의 동향을 점검하도록 지시를 내린 상황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김영삼과 권영해가 수뇌부에 대한 인선에 들어갔고, 하나회 출신 육군참모총장이었던 김진영과 기무사령관이었던 서완수를 군 통수권자 권한으로 전격 해임했다. 그렇게 공석이 된 자리에는 非하나회 출신인 김동진 연합사 부사령관(육사 17기)과 김도윤 기무사 참모장을 각각 육군총장과 기무사령관에 임명했다.[5] 여기까지 과정이 단 네 시간.
여기에 이르러서도 이 일이 군 수뇌부 교체 정도가 하나회 숙청 과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김영삼 자신과 몇몇 측근에 불과했다. 한 가지 웃긴 점은 김영삼 대통령의 명령을 하달받고 시행할 것을 공지한 사람이 바로 김영삼에 의해 잘리는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이 공지를 요약하자면 "군 내 사조직을 해체하라"였는데 김진영의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이를 들은 하나회 구성원들은 그 대상을 하나회가 아닌 학군장교 즉 ROTC 그룹으로 여겼다.
(중략)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회 = 한국 고위직을 지들끼리 지지고볶고 먹고 했던 군인들 사조직. (전두환, 노태우의 뿌리)
그걸 빵삼이는 급작스럽게 해체시킴. (너네들 직위 뿌셔뿌셔. 니들 다 껒여ㅋ)
지들끼리 반발하고 대비책을 꾸릴 틈을 안줌
하지만 그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대한민국 정치적 병폐의 뿌리 - 3당합당을 하게되오.
아이엠에프도 터뜨리게 되오.
정치적 능력도 이승만 >>>> 김구선생이라는 발언도 하게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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