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대선주자 탐구|안철수 가족관계
일제때 금융조합서 일해
전쟁물자 창구역할 하던 곳
캠프 “근무여부 확인 불가능”
안철수 후보의 가계를 보면, 그가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곱게 자란 모범생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안 후보가 자신의 책에 ‘나의 수호신’이라는 표현을 쓰며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던 할아버지 안호인씨에 대해서는 과거 친일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안 후보의 아버지 안영모(81)씨는 안 후보처럼 서울대를 졸업한 의사이고, 어머니 박귀남(76)씨도 이화여대를 졸업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안 후보의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인 부인 김미경(49)씨도 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이고, 남동생 상욱(49)씨도 서울에서 한의사를 한다. 여동생 선영(46)씨의 남편도 치과의사다. 안 후보의 딸 설희(24)씨는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 지금껏 미국에 머물고 있으며,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수학·화학 전공)를 받고 박사과정을 앞두고 있다.
할아버지 안호인(1906년생)씨는 경남 양산이 고향이며, 부산상업학교를 나왔다. 할머니도 부산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졸업했다. 할아버지의 친일 논란이 불거진 것은 안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직후인 지난해 9월 월간지 <여성조선>과의 인터뷰 내용이 발단이 됐다. 그는 안 후보의 할아버지인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소개했다. “안철수라는 이름은 저희 부친이 지으셨어요. 아버지는 일본강점기에 금융조합에서 일을 하셨어요. 그 시대에도 교육을 많이 받으신 편이라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셨는데, 그때는 일본인이 지점장을 하던 시절이라 해방된 후에야 농협 지점장을 지내셨죠.”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서는 안 후보 할아버지의 친일 논란이 불거졌다. 일본강점기 금융조합은 총독부 감독 아래 화폐정리 사업이나 토지조사, 세금수탈을 도맡았고, 전쟁물자를 공출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일부 블로거들은 “안 후보 부친이 ‘일본인이 지점장을 하던 시절이라 해방 뒤에야 지점장을 했다’고 말한 부분을 보면, 상당한 고위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7년 대선 때도 당시 정동영 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친이 해방 전 금융조합에서 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한나라당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안 후보 캠프의 금태섭 상황실장은 “현재로선 안 후보 할아버지께서 일본강점기 금융조합에서 일했는지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다”면서 “안 후보 할아버지께서는 경남 사천 쪽의 ‘조선미창’에서 퇴직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호인씨가 마지막으로 퇴직했다는 ‘조선미창’은 대한통운의 전신인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를 말하는데, 조선미창 역시 일본 강점기 때 쌀 수탈과 군수물자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5433.html
+ 추가 블로그 글
안철수 가계도
일제시대 금융조합은
일본인들이 지점장과 간부진을 장악했었던
친일 단체 금융조직으로서
'악질 친일기관'이었습니다.
일제시대 금융조합은
조선 농민들을 착취하고 수탈한
'악질 친일기관'이었습니다
========================================.
일단 다음 내용들을 보시죠.
아래 내용은 '논산 디지털 문화 백과'에서
퍼온 글임
충청남도 논산 '채운 금융조합'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있던 금융조합.
[변천]
1908년 채운금융조합 설립 당시 조합장은 박상환(朴祥煥)으로
조합원은 논산지역 6개면 1,526명이었으며, 자본금은 8,000원에 불과한 미미한 규모였다.
1921년 4월 조합원수는 400여 명이었으며,
정기총회 내빈으로 군수 카이쇼[貝沼], 오쿠다[奧田] 금융조합연합회이사장,
구수에[久末]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장, 모리이후지[森伊藤] 강경금융조합 이사 등
논산지역의 유력인사가 다수가 참여하였다.
정기총회는 매년 4월에 개최하였으며,
일본인 이사는 마츠키 세츠로[松木節郞]이 1920년 7월 26일부터 1924년 11월 15일까지 재직하였으며, 채운금융조합의 조직은 조합장·이사·감사·평의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채운금융조합은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하여 조선총독부·조선식산은행·금융조합연합회 등으로부터
차입금을 유치하였으며, 1931년 10월 말 당시 충청남도지역 금융조합 차입금은 4,851,000원에 달했다.
[의의와 평가]
1908년 3월 5일 설립된 채운금융조합은 설립 초기 강경지역 상공인과 농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기반을 구축하였으나,
일제강점기(1910년 이후)에 접어들면서 일본인 상당수가 임원진에 포진하고
경제적인 수탈을 위한 기구로 변하고 말았다.
아래 글은 대한민국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에서 퍼온 글임.
부안 금융조합
종 목; 등록문화재 제177호
명 칭; 구 부안 금융조합 (舊 扶安 金融組合)
소 재 지; 전북 부안군 부안읍 당산로 90 (동중리)
시 대; 일제강점기
부안 금융조합에 대한 설명입니다.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금융기관으로 건축한 후 부안농협을 거쳐
현재 부안군청 해양수산과 사무실로 사용하는 근대 사무소 건축물이다.
일본인들의 경제 수탈 정책을 지원하려고 설립한 소규모 금융조합 건물로,
곡창지대인 부안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해 가는 데 선봉 노릇을 한 시설이다.
다음 글은 경상북도 안동
'디지털 안동 향토문화 백과'에서 퍼온 글임
안동 금융조합
한자; 金融組合(금융조합)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성격; 금융기관,수탈기구
설립연도/일시; 1908년 6월 12일
해체연도/일시; 1956년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수탈정책을 담당하였던 금융기관.
[설립목적]
일제강점기 금융조합은 일제의 수탈정책을
최전방위에서 담당할 금융기관으로서 설립되었다.
이상 내용을 보면 일제시대 금융조합이
얼마나 '악질 친일기관'이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지난 번에 올렸던 글임.
안철수 조부는 일본제국 금융조합 고위 간부로 추정됨.
젊은이들이 주로 안철수를 지지하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참신하고 도덕적이라서
지지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검증을 받지 않아 친일논란도 없고
부정부패 논란도 없으니 그렇겠지요.
그런데, 안철수 조부는 일제시대에 친일기관
금융조합에 근무했다는 것을 아시나요?
안철수 조부는 일본제국 금융조합에 근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금융조합에 근무하여 친일논란이 일었던
정동영 부친과 비슷한 케이스 입니다.
=================================================
일제의 금융조합은 조선인(농민)을 착취하고 수탈한
일제의 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융조합 직원들은 조선 농민들을 착취하여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등
'동포의 고혈을 빨아먹던 악질 중의
악질 친일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 조부는 금융조합의 고위 간부를
역임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
안철수 부친 안영모씨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안철수 부친은 84세 즉 1928년생입니다.
그럼 안철수 조부는 몇년생일까요?
보통 20세가 넘어야 장가 가서 아들을 낳는다고 볼 때
안철수 조부는 1908년생 이상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즉 안철수 조부는 1900년생~1908년생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1945년 해방 당시 안철수 조부는
37세~45세였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즉 일제시절에 교육을 많이 받았던
안철수 조부는 해방 당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중년의 남자였다고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본제국 금융조합의 상무,지점장을
할 나이가 되는 것입니다
===========================================.
자이제 안영모씨의 인터뷰 내용을 잠시
살펴 봅시다.
안영모 원장 인터뷰 내용
여성조선 2011년10월호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금융조합에서 일을 하셨어요.
그 시대에도 교육을 많이 받으신 편이라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셨는데,
그땐 일본인이 지점장을 하던 시절이라
해방된 후에야 농협 지점장을 지내셨죠."
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안철수 조부는 해방직후 농협 지점장을 했는데
그 전에는 즉 일제 시절에는 '조선인'이라
금융조합 지점장을 아쉽게도 못했다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안철수 조부는 일본제국 금융조합 지점장을
넘보던 친일파 고위 간부였다는 것이
여기서 확연히 드러나지 않습니까?
나이로 보나 인터뷰 내용으로 보나
안철수 조부는 일본제국 금융조합의 고위
간부였음이 분명합니다.
금융조합 지점장이면 상무급인데
이 직급을 일본군 군인 직급으로 견주어 보면
일본군 소령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즉 안철수 조부는 일제시절에
일본군 소령에 견줄수 있는 직급을 갖고
친일행위를 했다고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친일파 명단에 넣지 않았습니까?
아래는 참고 자료
여성조선 10월호(2011년)
<U></U>" target="_blank">http://woman.chosun.com/magazine/viewArticle.do?atCode=970</U>
======================================================================
일제시대 금융조합
"지방금융조합은 겉으로는 라이파이젠(Raiffeisen)식 신용조합임을
표방했으나 제국주의의 경제적 지배를 위해 총독부가 직접 통제하고
농촌의 화폐정리사업·납세선전 등을 추진한 수탈기관이었다"
"1933년 조선금융조합연합회를 결성, 중앙과 지방조직을 정비한
거대한 금융기관으로 발전해 1938년 말에는 조선식산은행에 버금가는
유력한 금융기관이 됐고
이를 통해 1945년 당시 912개소의 단위조합과 하부 조직으로
3만 4345개의 식산계를 거느린 일제강점기 중 가장 큰 규모의
금융지배, 수탈기관이었다"
"일제 말기 금융조합은 중일전쟁 발발 이후 산업동원령이 내려진
일제 말기로, 전 농민의 80%가 소작농으로 전락했으며
한반도 산출미의 60% 이상이 공출로 수탈됐던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착취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특히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금융조합은
일제가 우리 농어민을 수탈해서
전쟁물자로 물자를 공출하는 기관 역할을 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la22&logNo=80170805376
'ㄴ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청소년 절반 "죽는게 낫다는 생각해본적 있다" (0) | 2014.03.21 |
---|---|
[스크랩] [옥소리] 옥소리, 7년 만의 외출…tvN `택시` 전격 출연 (0) | 2014.03.21 |
[스크랩] [박철.옥소리]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0) | 2014.03.20 |
[스크랩] [취재파일] 가부장의 짐을 떠안고 가는 대한민국 남성들 (0) | 2014.03.20 |
[스크랩] 한국의 폐지 재활용률 세계 1위 (0) | 2014.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