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김치녀’라는 말은 한국 여성들의 나쁜 속성만을 모아 놓은 신조어. 한국 여성은 이기적이고, 명품만을 좋아하며, 남자들을 뜯어먹으며, 직장에서 땡땡이 치기를 좋아한다 등의 비난과 폄하가 몽땅 김치녀란 말 속에 들어있다. 예전에 주로 쓰였던 된장녀와 비슷한 의미에서 한국 여성을 더 비하하는 단어다.
길거리 설문 조사 결과 한국 젊은 남성들에게 ‘김치녀’는 익숙하고, 상당히 공감하는 단어로 비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치녀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100%의 남성들이 “들어봤다”고 응답했다. “김치녀라는 말은 써보지 않았지만 동의한다”는 사람은 무려 61.5%(32명)였고 실생활에서 ‘김치녀’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4명 중 1명(13명)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응답자의 96%(50명)는 “김치녀가 여성 비하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자주 눈팅한다는 30세 회사원(광고회사 재직)은 기자에게 “한국은 여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특유의 인식이 있어서 남자 입장에서는 화가 날 때가 있다”며 “요즘 남자가 여자들을 위해 해주는 일은 엄청 많아졌는데, 여자가 남자를 위해 하는 일은 훨씬 줄어들었다는 측면에서 김치녀라는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국 남성들의 한국 여성에 대한 공격 성향은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양적·질적으로 폭발하고 있다. 여성 혐오에 가까운 여성 비하 글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는 것이다. 일베에서 여성을 ‘김치녀’라고 부르는 정도는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여성을 여성 성기를 가리키는 ‘보X’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지만 성기를 가리키는 ‘보X’와 ‘벼슬아치’를 합쳐 ‘보슬아치’라는 단어가 쓰일 때도 있었다. 여성을 격앙시킬 만한 비속어다.
‘일베’에 최근 24시간 동안 올라온 베스트 글 일부를 보자. ‘간간이 들을 수 있는 보X(여성 성기를 나타내는 속어)들의 헛소리’ ‘김치년들 몸매가 ㅆㅎㅌㅊ(평균 이하라는 뜻의 인터넷 용어)인 EU(이유)’ ‘여자들 패드립니다’ ‘여자랑 친해봤자 인생에 아무 쓸모없는 이유’ ‘미대 음대 문창과 예체능 보X(여성 성기를 나타내는 속어)들의 흔한 착각’…. 모두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글 일색이다.
일베와는 정치적 성향이 사뭇 다른 커뮤니티 ‘MLB park’에도 하루 동안 가장 많은 리플이 달린 글 25개 중 22개는 한국 여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중 9개는 여성들의 금전 감각, 몸매, 외모 등에 대한 논란거리를 던진 글이다. ‘친구들 앞에서 음식값 계산하지 않아 헤어지자고 했다’는 여자 이야기, ‘결혼할 때 친정 부모님에게도 집을 마련해달라고 했다’는 여자 이야기, ‘158㎝에 58㎏의 여자는 뚱뚱하다’는 글이 논란을 불렀다.
다른 커뮤니티도 대동소이하다. 표현이 다르다 뿐이지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여성들을 비난하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여성의 경제관념을 지적하다가 출산이나 육아 문제, 연애 문제, 성격, 외모 등을 언급하는 등 주제도 무차별적이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한국 여성에 대한 일반화다. “한국 여성들은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때로 외국 여성들과 비교할 때도 있는데 주로 언급되는 것이 일본 여성이다. 지난 2월 24일을 전후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 TV’의 일본인 여성 BJ인 ‘히카리’가 더치페이에 대해 언급한 영상이 속속 공유됐다. “일본 여성들은 철저하게 더치페이를 한다”는 것인데, 남성 네티즌들은 “이러니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일본 여자들이 개념 있다는 말을 듣는다”거나 “한국 여자들은 안 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에서 통용되는 한국 여성에 대한 비판적 이미지는 “무조건 남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려 하고, 일할 때는 편하게 하려 하면서, 성형과 다이어트를 무기로 남성을 속이며, 출산과 육아를 핑계로 권리는 다 찾아가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정리가 된다. 반면 한국 남성들은 여성들의 이기심을 알면서도 봐주는 순박하거나 우직한 사람으로, 때로는 이기적인 여성들에게 뒤통수 맞는 불쌍한 처지로 묘사된다.
인터넷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얼마 전 대표의 자살로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남성연대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하겠노라며 등장했다. 여성가족부 앞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요구하는 남성 1인 시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지난 1월 15일, 작년 연말을 ‘안녕하십니까’ 신드롬으로 몰아넣었던 고려대에서는 ‘김치녀’에 대한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김치녀로 호명되는 당신, 정말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에는 “과거부터 있었던 여성 혐오는 나날이 악화돼 현재 ‘김치녀’ ‘된장녀’라는 노골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 포함돼 있었다.
여성들을 일반화시켜 비하하는 여성 혐오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여성 혐오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가 쓴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책을 보면 일본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여전히 여성은 열등하고 남성에게서 배제돼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법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공저 ‘불편한 인터넷’의 한 챕터 ‘대상화와 인터넷상의 여성 혐오’에서 “인터넷을 통한 가십과 비방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라고 설명하면서 인터넷상의 여성 혐오는 일반적인 현상에 가깝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성 혐오는 서양의 여성 혐오와 조금 차이가 나는 측면이 있다. 마사 누스바움은 대표적인 여성 혐오의 현상이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여자가 못생겼다고 합의된 경우라면, 그녀는 보기 흉한 신체부위로 일컬어지며 조롱당한다. 여자가 예쁜 경우에는 겉모습만 꾸미는 골 빈 매춘부로 전락한다.”
반면 일본의 여성 혐오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잃어버린 남성’을 드세고 이기적인 여성에게서 보호하자는 논리이다. 일본 사회학자 미우라 아츠시는 2009년 쓴 ‘비인기남!-남성 수난의 시대’라는 글에서 ‘남성보호법’이라는 것을 제창하기도 했다.
당시 미우라는 남성을 여성보다 우선으로 고용하고, 중매결혼 제도를 도입하자는 남성보호법을 제창하면서 ‘남성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여성’ ‘모성을 느끼게 하는 여성’이 사라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남성을 사회적 약자로 만들어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여성 혐오가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에 좀 더 집중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10여년 전부터 유행했던 ‘된장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여성 혐오는 ‘남자들에게 빌붙는 여자’ ‘사치스러운 여자’에게 주로 집중된다.
“여성 혐오자는 아니지만 김치녀는 싫어한다”고 밝힌 일베 유저 27세 대학원생(중앙대)은 “지나가다 프라다나 루이비통 가방을 든 여자를 보면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며 “카드 할부로 사거나 남자친구에게서 선물받은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그렇게 해서라도 명품백을 가지고 싶어하는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기자 주변에는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여성이 적다”고 대답하자 “모임 같은 곳에 가면 다들 ‘나는 김치녀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 많은 명품백은 어디로 팔리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검소한 척하면서 사치스러운 여성도 많을 것”이라고 단정 짓기도 했다.
반면에 성적인 측면에서 비하하는 내용은 의외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서울대 여성학 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있는 윤보라씨는 얼마 전 논문 ‘일베와 여성 혐오’를 통해서 우리나라 여성 혐오를 ‘여성성에 대한 혐오’라고 규정지었다. “여성성과 성적 차이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게 윤씨의 설명이다.
“성폭행당한 여자를 절대 도와주지 말라는 글이 일베를 시초로 대형 커뮤니티에서 유행하고 있다. 한국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쌍년 근성’이 있기 때문에 성폭행의 위기에서 구해줘도 자기 혼자 도망을 가서 결국 남자만 다치거나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윤씨는 “성범죄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과 이를 둘러싼 성별 권력관계, 미온적 처벌 관행 등은 이런 인식에서는 끼어들 틈도 없다”며 몇몇 사례, 경험담이 재구성돼 확산되면서 “여성들은 은혜를 모르는 후안무치라는 낙인을 얻었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는 여성 혐오 현상이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젊은 남성들의 불안감을 꼽았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혐오는 성 대결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불안하고 불확실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다른 약자를 공격하며 위안을 찾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취업, 결혼 등으로 미래가 불안한 젊은 남성들이 지위가 향상되고 수가 늘어나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 등에게 혐오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베 회원인 ‘슨수청년’ 역시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남성 자신들의 무의식적인 열등감과 기존 가부장적 가치를 급속도로 부정해 나가는 현대 여성의 과격함을 자조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라는 게 일베 회원도 인정하는 여성 비하의 핵심 원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에노 치즈코는 급속히 추락한 남성성을 지키는 과정에서 여성 혐오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남자 되기는 ‘여자 되지 않기’와 같은 말인데 이를 테면, “계집애 같은 말 하지 마”라는 핀잔을 듣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부러 여성을 차별한다는 것인데, 이때 여성 혐오적’ 발언을 듣는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너 남자구나”라고 인정해 줄 남성에게 자기 과시 측면에서 하는 것이 여성 혐오적 발언이라는 것이다. 즉 여성 혐오는 기존의 남성성, 남성 권력을 지키려는 시도이며 거꾸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여성 혐오를 단순히 여성 인권적인 측면에서 보지 않고, 다른 사회 문제와 이어 보는 것이 전문가의 일반적인 시선이다. 오랫동안 다문화 활동을 해 온 한 활동가는 익명을 전제로 주간조선에 “계속된 경기 불황뿐 아니라 다문화, 여성 지위 향상 등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약자’라고 생각하면서 과하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는 것 같다”며 “여성 혐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억눌린 분노와 불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700872
출처 : 쌍화차 코코아
글쓴이 : 잠시비공개쟈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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