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꽁초 줍고 `가치담배` 사 피우는 빈곤노인들
"우리 같은 노인들이야 살 만큼 살았는데 얼마나 더 만수무강을 하겠다고 40년 넘게 피운 담배를 끊겠어. 꽁초라도 줍고 동냥이라도 해서 피우는 거지."
담뱃값 인상 첫날인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에서 만난 70∼80대 노인들은 담뱃값 인상 얘기에 인상부터 찡그렸다.
이곳에서 만난 김성길(77) 씨는 "'던힐' 담배는 가격이 안 올랐다고 해서 그걸 사려고 슈퍼를 열 곳도 넘게 다녔지만 단 한 곳도 던힐을 파는 곳이 없었다"며 "담배 한 모금에 소주 한 잔을 친구로 삼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더 군색해질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담뱃값이 오르면서 빈곤층 노인들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새해 첫날도 어김없이 공원을 찾은 노인들 가운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난해 연말 공원을 찾았을 때보다 확연하게 줄었다.
이곳에서 만난 길재민(82) 씨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3분의 2가량 남은 담배를 보여주며 "어제 한 갑 사놓은 건데 벌써 이렇게나 폈다"며 "담뱃값이 올라서 이걸로 일요일까지 버텨보려 하는데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담뱃값을 아끼기 위해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워 모으는 노인도 있었다. 함모(71) 씨는 "한 달에 받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담뱃값이 오르면 예전만큼 담배를 사서 피울 수는 없지 않냐"며 "궁할 때를 대비해서 다른 사람이 얼마 피우지 않은 채 버린 꽁초를 미리 주워놓고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함 씨 손에는 비교적 길이가 긴 담배꽁초 7개가 쥐어져 있었다.
보청기 수리를 위해 종로를 찾은 김흥남(69) 씨도 "애들이 담뱃값 걱정하지 말고 피우고 싶으면 피우라고 말은 하는데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며 "아직은 큰 걱정은 없지만, 한 달 두 달 쌓이다 보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탑골공원 일대에서는 담배를 한 갑이 아닌 한 개비씩 파는 일명 '가치담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종로3가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모(여·53) 씨는 "한 개비에 300원씩 하던 것을 500원씩 받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찾는 사람은 늘었다"며 "한 갑씩 사는 게 부담스러운 노인들이 담배를 참고 참다가 한 개비라도 사러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