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ㄴ

[스크랩] 충무공 이순신에게 도전했던 왜장들 이야기....

음바페여친 2014. 5. 1. 17:44

 


 

 

보통 불멸의 이순신의 영향으로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많이 떠올리는데

와키자카 이외에도 여러 장수들이 이순신 장군과 맞붙었었죠

결과야 뭐 다들 아시겠지만...

 

이하는 이순신장군과 맞붙었던 "네임드" 왜장들입니다

 

1. 왜 수군 총대장 토도 다카토라

 

이세번의 다이묘 , 토도 다카토라 (藤堂高虎)

 

 

"무사란 주군을 7번 바꾸지 않는다면, 무사라고 말할 수 없다."

 

라는 비범한 어록을 남긴 왜장...

 

실제로 임진왜란 직전까지 7번 주군을 바꾸었고

임진왜란 이후 3번을 더 바꾸었으니 총 10번에 걸쳐 배신한 인물;;;

하지만 능력이 좋아 꽤나 대우받으며 살았고 노년에는 이세지방 32만석의 다이묘가 된다

 

왜국에서는 뛰어난 지장(智將)으로 유명하고 수많은 유명 전투에 종군했던 인물이고

이를 히데요시도 인정해서 수군 총대장을 맡긴거이긴 한데...

 

임진왜란 조선에 와서 완전 스타일을 구김...ㅠㅠ

이순신 장군의 첫 승리인 옥포해전의 상대역이 바로 이 인간.

 

이순신 장군에게 임진년 내내 털리던 중

자신의 주군이던 토요토미 히데쓰구가 히데요시에게 숙청당하자

귀국해서 출가하여 승려가 됐다가

 

그의 재주를 아깝게 생각한 히데요시가 다시 소환해서

"니혼마루"라는 특별제작 전함을 주고 조선으로 다시 파견

그리고 칠천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을 박살내고 왜국에서 명장으로 칭송받지만...

 

얼마안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에게 10배나 많은 병력으로 덤볐다가 떡실신당하고

화살 3대에 맞은체 겨우 도망치는데 성공..

 

 

이후 더 이상 이순신 장군에게 개길 엄두를 못냈고 종전때까지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2. 구키 요시타카

 

현대 인술(닌자술)에 영향을 미친 구키신류의 9대 계승자

 

 

일본 남북조시대 당시  남조의 고다이고 왜왕을 구출하고

둔갑술로 3종의 신기를 되찾아온 공로로 구키(九鬼)라는 성을 하사받은

"후지라와노 야쿠시마루 류신"때부터 물려내려온

가전의 병법인 "구귀신전 천진병법(九鬼神傳 天眞兵法)"의 9대 계승자 이자

남조 패망이후 구마노 해적을 이끌던 구키가의 가주

 

구마노 해적의 명성으로 히데요시에게 스카웃 되어

임진왜란에 수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이순신? 훗...

구키가에  대대로 전해오는

신풍비술(神風秘術)과 적은의 술(敵隠之術), 화중풍진편(火中風陣遍)의 비법으로 혼란 시킨 후

수술(水術)과 수마술(水馬術)로 모두 해치워주마...

 

은 그런거 없고

그냥 이순신 장군에게 박살났다....

(저 위에 나온 술법같은 것들은 지어낸게 아니라 실제 구키가 비전의 병법 이름이다...)

 

수백년을 이어온 가전의 병법과 해전기술 그리고 닌자술(?)도 이순신 장군에게는 안통했다....

안골포해전을 시작으로 명량까지 줄줄이 발리다가

나 그냥 육군 할래..ㅠㅠ 라며 육군에 편입함... (해적출신 주제에!!)

 

 

임진왜란당시 기함에 맞은 대장군전을 가져가 대대로 가보로 보관해서 더 서글픈 왜장...

 

 

 

 

3.가토 요시아키

 

아이즈번 40만석의 다이묘

 

역시나 다카토라, 요시타카와 함께 줄줄이 박살나는 역할이었다...

도도 다카토라랑 진짜 사이가 안좋았고 닮은점도 없었지만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이순신 장군에게 같이 줄줄이 쳐발렸다는거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한 사이

수군으로 참전한 왜장들 모두가 공을 세우던 칠천량해전에서 마저도

 

끝까지 남아 저항하던  이억기와 최호가 이끄는 소규모 조선 함대의 공격으로

화살에 맞아 부상당하는 불운까지 당한 불운의 아이콘 

 

명량해전에 직접 참가는 하지 않았으나 앞에 나간 동료 왜장들 다 쳐발리는걸 직접 목격했고

이후 역시 이순신 장군에게 개길 엄두를 못냈다.

 

하지만 이후 울산성을 포위하던 명나라 수군을 격파하고 울산성에 고립된 가토 기요마사를 구출해서

 

이순신이라는 먼치킨을 만나서 그렇지 내가 호구는 아니야!ㅠㅠ

 

라는 처절한 메시지를 후세에 남겼다..

 

 

4.와키자카 야스하루

 

 

불멸의 이순신 으로 스타덤(?)에 오른 왜장...

 

"시즈카타케의 칠본창"으로 불리우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인식보다 일본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장수이며

앞서 말한 도도 다카토라,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 가 일본에서는 훨씬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 왜장이 제일 유명한 듯 하다

 

사실 이 왜장은 수군이 아니라 육군소속 이며

임진왜란 초기 용인에 모인 전라,충청의 근왕군 5만을 1500의 병력으로 격파해서 유명해졌다

(사실 5만이 다 농민에 어중이 떠중이라..왜군 1500명이 돌진해오자 모두 그냥 도망가 버렸다;;;)

 

이후 이순신에게 박살나는 수군을 돕기 위해 내려왔다가 한산도 대첩에서 거하게 말아먹고

한동안 무인도에 표류해서 "임진년판 로빈슨 크루소" 찍었는데

이때 먹을게 없어서 미역만 먹고 살았다고 한다...

(미역웰빙의 선두주자..)

 

이후 구출되서 살아났는데

이때의 고난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한산도에서 박살난 날 미역을 먹었다고 하며

현재 그의 후손들 역시 한산도 해전이 일어난 날 미역을 먹는다고 한다

 

 

 

5. 구루지마 미치후사

 

 

충무공에게 당한 최대 피해자....

 

 

애네들이 바로 진짜 진퉁 왜구들!!

무라카미 수군(왜구)의 가주이던 구루지마 미치유키는 당포해전에서 충무공에게 목이 달아났고..

가주자리를 물려받은 동생 미치후사는 복수를 위해 명량해전에서 선봉을 자처했다

 

그까지는 좋았는데...상대가 누구던가...

역시나 이순신 장군의 손에 형님곁으로 ㄱㄱ싱

또한 그를 알아본 항왜에게 끌어올려져 목이 잘려 장대에 내걸리는 굴욕까지 당했다

 

왜국에서는 다이묘가 전투중 죽는 일이 어지간해서는 없던데다가

이순신에 대한 공포까지 더해져서

일본측 기록에는

"이순신이 입으로 번개를 뿜어서 거기에 맞아죽었음"

이라고 썻다고;;ㄷㄷㄷ

 

무슨 이순신 장군이 고질라냐.....

 

어쨋거나 이로써 구루지마 가문의 적통이 끊겨버렸고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줄 잘못 섯다가 가문도 멸문크리..

 

 

출처 : 소울드레서 (SoulDresser)
글쓴이 : 꼬마니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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