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서른 후반대로 넘어오면서 옷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이십대 때 옷에 관한 이슈는 참 단순했다. ‘핏’의 문제, 즉 몸매관리와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옷, 좀 더 좋은 브랜드의 옷을 살 수 있냐의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 난 근본적인 ‘옷의 정체성’의 문제에 봉착했다. 더 이상 젊지도 그렇다고 완연한 중년도 아니고, ‘예쁘게 보이는 것’만이 장땡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진 이 애매한 나이에, 쉽게 말해 백화점으로 치면 대체 몇 층에 가서 어떤 옷을 사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개인의 패션 히스토리와도 관련 있을 수 있다. 직장을 위한 정장을 제외하고는 난
주로 트렌드와 무관한 아메리칸 캐주얼룩으로 일관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전신거울에 우연히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얼굴은 아줌만데 차림새과 머리스타일은 대학새내기였던 것이다.
예전엔 흰 면 티셔츠 한 장만 입어도 착 감겼는데 이젠 섣불리 ‘심플 이즈 베스트!’로 나갔다간
초췌할 뿐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하루아침에 ‘학생’에서 ‘여사님’으로
둔갑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심플의 고급화를 노려 질 샌더에서 옷을 살 형편도 안 된다.
바야흐로 패션공황상태에 빠진 것이다. “참 동안이세요.”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받을 때부터 대비
를 했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혹자는 이럴지도 모른다. “걍 입던 대로 입으세요, 뭐 어때, 내 마음이지.” 하지만 하던대로 걍 찢
어진 청바지를 입어도 보는 사람 입장에선 ‘어리게 보이려고 애쓴 티’가 난다면, 혹은 자신이 과
거 가장 빛났던 시절에 즐겨 입던 스타일을 계속 최고라며 고수한다면, 그건 솔직히 보는 사람들
에게 죄송한 일이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예전에 어울렸던 것들이 반드시 지속해서 어울리는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겸손함과 극단적인 ‘젊은이룩’vs‘아줌마룩’의 양자택일이 아닌 애
매하면 애매한 대로 ‘틈새룩’을 찾기 위한 부지런함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가 자리를 옮겨간 곳은 ‘프렌치 시크룩’이었다. 무채색계열을 기본으로 쓰면서 아메리칸 캐주얼에 비해 핏이 더 여성스러운 것이 좋았다. 하지만 단순무식한(?) 아메리칸들의 캐주얼룩에서 까탈스럽고 시니컬한 프렌치들의 시크룩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찌 쉬우랴. 물방울무늬 치마 잘 못 소화했다간 월남아가씨 되고 레이어드룩 무거워지면 시인지망생인 인사동의 찻집 여주인 된다. 결국 프렌치시크의 범주 속에서도 내가 지향해야 마땅할 스타일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단순하지 않고 적절한 개성과 컬러감을 주장하며 위트와 보이시한 매력을 풍기면서도 전체적으로 청량감 있는 섹시를 표방하는 프렌치 시크룩’이라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그렇다, 나이 들면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 관대해지는 게 미덕이지만 거꾸로 패션에 있어서 만큼은 더더욱 까다로워질 필요가 있다. 자, 그런데 어디 가서 저런 옷을 찾지?
글/임경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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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얼굴이나 분위기에서 '젊은 기운' 이 빠지면서 가지고 있는 옷들이 안 어울리는 때가 오더오 ㅎㅎ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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