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앞머리를 다듬고, 어떤 질문에도 잘 웃었다. "오빠, 미안해. 사랑해"라며 눈물지을 때만 빼면 말이다. 세월호 희생자 김동혁군의 동생 김예원양(16)의 SNS 배경 화면은 오빠가 구명조끼를 입고 찍은 마지막 모습이다. 배 안에서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김동혁군이 배가 뒤집히기 직전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 내 동생, 절대 수학여행 가지 말라고 해야겠다"라고 찍힌 동영상이 저장돼 있었다.
단원고등학교에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신입생 200여 명 가운데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동생 18명이 포함돼 있다. 신입생 김예원양은 본인의 단원고 학생증과 오빠 김동혁군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다닌다. 항상 가방과 교복에 노란 리본을 달고, 리멤버(remember) 0416'이라 적힌 팔찌와 반지를 찬다. 예원양은 "오빠가 내 앞에 1분만 나타나면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4월1일, 아버지 김영래씨(44)가 동석한 가운데 안산시 단원구 그의 집에서 진행됐다.
학교생활은 어떤가?
오빠랑 같은 학교에 들어가 같은 교복을 입을 수 있어서 좋아요. 제가 다른 학교에 입학했다면 매일 오빠 보러 가기 힘든데,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도 언제든지 보러 갈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단원고에 안 가고 싶었어요. 부모님도 안 가길 원하셨고 심지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까 생각도 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오빠는 단원고에 다니면서 사고가 났으니, '오빠 대신 내가 단원고를 졸업하면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오빠 교실(2학년 4반)에 자주 가는 편인가?
초ㆍ중ㆍ고등학교 전부 오빠와 같은 학교였어요. 중1 때는 오빠가 제 반에도 오고, 제가 오빠 반에 가기도 했어요. 같은 고등학교에 왔는데, 내가 오빠를 만나러 갈 수는 있지만 오빠가 나를 만나러 올 수는 없네요. 어제도 야간자율학습 끝난 후에 다녀왔어요. 오빠 만나면 "잘 있었어?" "새 친구가 생겼다" 그런 말을 해요. 하루 한 번씩 가는 걸 까먹을 때도 있어서 미안해요. 최근에는 오빠 반에서 책상에 있던 유품이 없어졌어요. 먹다 남은 과자가 교실에 어지럽혀져 있고 다른 과자는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기도 했는데, 생존 학생이 그걸 보고 놀라서 쓰러졌다고 해요. 그냥 물건이 아니고 유품이잖아요. 그걸 건드린 건 정말 나쁜 짓이죠. 화가 많이 났어요.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인 걸 말하나?
친구가 "오빠 있어?"라고 묻기에 아무 생각 없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세월호에서 희생됐어"라고 말했죠. 저는 최대한 밝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너무 밝아서 친구가 놀라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특히 (죽은) 오빠가 놀랐을까 봐 미안했어요. 좋아서 해맑게 이야기한 게 아닌데…. 친구들이 제 눈치를 봐서 못 물어볼까 봐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말해요. 솔직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인지는 말하지 않으면 잘 몰라요. 속으로 무슨 힘든 일이 있는지 모르는 거죠. 제가 아는 세월호 유가족 신입생은 5명 정도예요. 전부 친해지고 싶은데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머뭇거려져요. 실제로 어떤 친구는 충격이 커서 말만 꺼내도 슬퍼하고 불안해하니까요. 서로 상황을 아는 친구들끼리는 힘들면 뭐든지 다 말하기로 약속했어요. 다른 학교로 배정받은 친구들과도 꼭 말하기로. 혼자서 이겨내기 힘든 게 많으니까요. 요새는 4월16일이 다가와서 그런지, 진도체육관에 처음 갔을 때 그 느낌, 풍경, 냄새 같은 게 갑자기 떠올라요. 오늘은 수업 시간에 떠올라서 깜짝 놀랐어요.
고3이 된 생존 학생과 교류가 있는지?
학교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고3 중에 생존자가 있어요. 원래 1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4명만 남았대요. 생존자가 눈앞에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살아나왔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두려움에 떨었을 텐데 지금은 괜찮을까…. 궁금한 건 많지만, 생존자가 나보다 더 아플 것 같아서 물어볼 수 없어요. 생존한 언니와 한 번 문자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생존자인지 물어보는 게 겁이 났다. 괜히 아픈 곳을 찌르는 것 같아서'라고 했더니 '괜찮다, 많이 놀라지 않았느냐'라고 답이 왔어요. 몇 마디만 나눴는데도 오빠 생각이 나고 힘을 받았죠.
학내에서도 '잊지 말자' 움직임이 있나?
단원고에서는 노란 리본을 거의 다 달아요. 적어도 학생들과 선생님은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교내에 있는 '4ㆍ16 학생위원회'에서는 생존 학생, 신입생 등이 모여서 참사 1년을 기억하는 활동을 준비 중이고요.
오빠가 보고 싶을 텐데….
오빠랑 티격태격하면서도 늘 함께 있었어요. 아빠가 한 달에 한 주씩 야간근무 하실 때 둘이 밥도 같이 해먹고, 안방에서 오빠가 재워주기도 하고요. 귀엽다고 쓰다듬어주고, 사랑한다고 말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징그럽다고 피하곤 했는데, 진짜 후회돼요. 오빠가 수습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얼굴 보지 못한 것도 후회되고요. 오빠 손 한 번만 잡고 싶었는데…. 그래도 집안 곳곳에 오빠가 있고 분향소, 하늘공원, 그리고 학교에도 오빠가 있으니까… 여기(학생증)에도 오빠가 있으니까 어딜 다녀도 오빠와 함께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오빠가 있는 교실을 없애지 말았으면 해요. 제가 졸업할 때까지는, 정말 어쩔 수 없다면, 생존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5월에 1000만인 서명을 받으러 나갔어요. "서명 부탁드립니다"라고만 말했는데,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저희 오빠가 세월호 참사로 죽었습니다. 서명 좀 부탁드립니다"하고 나도 모르게 외쳤어요. 사람들이 놀라서 서명해주는데, 이 광경이 너무 슬펐어요. 솔직히 멀리 나가기 귀찮고 거리로 나가더라도 되는 일은 하나도 없지만, 이렇게라도 오빠를 위해서 뛰어다녀야겠다고 생각해요. 국회에서 자든, 팽목항까지 걷든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 4월16일이 다가오니까 여러 행사가 많아서 바빠요. 국회, 분향소, 공원…. 우리를 생각해서 고생하면서 만들어주신 행사니까 매우 감사해요. 몸이 힘들어도 힘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나한테 다 힘이 되는 일이니까 슬퍼도 견뎌야죠.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궁금해요, 왜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걸까. 나빠요, 왜 그랬는지. 진짜 진짜 진짜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요. 왜 배를 출발시켰는지,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지, 그 지위에서 떨어지는 게 무서운 건지…. 한 명도 살리지 못했으면서 지위를 탐내는 건 무슨 배짱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오빠가 죽은 게 실감나지 않아요. 혼란스럽기만 한데 1분만이라도 좋으니 오빠가 제 앞에 나타나면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일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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