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인터넷뉴스본부 채석원 기자 입력 2014.08.19 15:29 수정 2014.08.19 17:57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파트에서 바퀴벌레가 완전히 사라진 거 같아요." 시작은 회사 동료의 이 한마디였습니다. "마른장마
때문에 모기가 줄었다는데 왜 우리 집에는 모기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하자 회사 동료는 "모기는 모르겠지만 바퀴는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간 바퀴 구경을 못한 듯도 싶습니다. '정말 바퀴가 줄어든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바퀴도 엄연한 곤충입니다. 그래서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곤충학전공에 먼저 전화했습니다. "바퀴를 따로 연구하는 교수님은 안 계십니다." 맥 빠지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모기ㆍ바퀴 박사'로 유명한 L교수의 연락처를 찾았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바퀴가 엄청나게 많았죠. 근데 요즘은 바퀴 개체 수가 급감한 탓인지 바퀴에 대해 묻는 기자들도 없어요."
L교수에게 '바퀴가 눈에 잘 안 띄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냐'고 묻자 이처럼 답했습니다. L교수는 "바퀴가 많이
사라진 탓인지 연구 의뢰마저 없다"면서 "요즘은 모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방제업체가 (바퀴에
대해) 더 잘 알 것"이라며 방제업체 사장인 C씨의 전화번호를 알려줬습니다. 두 번째 통화에서 뭔가 답이 보이는 듯합니다. 다시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L교수와 함께 바퀴 밀도를 조사한 바 있다는 C씨의 얘기는 또
달랐습니다. 그는 "바퀴 밀도에 대한 최근 데이터는 없지만 개체 수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고 했습니다. C씨는 자기는 업체
방제를 주로 맡고 있다면서 가정집 방제도 담당하는 세스코에 문의하라고 했습니다. 대체 누구 얘기가 맞는 걸까요?
세스코 관계자도 C씨와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세스코 마케팅팀의 S씨는 "외국 서식률이 높은 일본바퀴가 실내에서 많이
발견되는 등의 변화는 있지만 바퀴 개체 수가 감소하진 않았다"면서 "되레 개체 수가 늘어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쯤 되면 소위
'멘붕'이 찾아옵니다. '이제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전화통만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이 딱한 모양인지 한 후배가 "바퀴 살충제 제조사에 매출액을 물으면 될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이
녀석, 진작 알려주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바퀴 살충제를 만드는 외국계 회사인 헨켈 코리아에 전화해 '바퀴 살충제의
매출액 증감 추이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두 시간 뒤에 연락을 주겠다고 합니다. 외국계회사라서 그런지 시간 약속을 잘 지킵니다.
약속 시간이 되자 전화가 왔습니다.
이 회사는 에어졸 살충제와 벽이나 바닥에 붙이는 설치형 살충제를 함께 생산합니다. 최신 설치형 살충제에는 바퀴가 좋아하는 땅콩버터
오일을 추가해 유인력을 10% 강화했다고 하네요. 한국의 바퀴가 땅콩버터에 입맛을 다시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알아보니 한식당
바퀴는 탄수화물을, 정육점 바퀴는 단백질을 좋아해 방제할 때 맞춤형 먹이로 유인해야 한다는군요.
여하튼 이 회사 관계자가 보내준 자료로는 바퀴 증감 추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기어다니는 해충' 살충제 시장의 규모를 집계한
자료였던 탓입니다. '기어다니는 해충' 살충제 시장 규모는 2011년엔 280억8,200만원, 2012년엔 277억7,300만원,
2013년엔 306억3,600만원입니다. 바퀴ㆍ개미ㆍ진드기 살충제 시장을 모두 포함한 때문에 이 회사 다른 관계자에게 바퀴
살충제 시장의 자료만 따로 떼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드디어 제가 원하는 자료가 메일로 도착했습니다. 바퀴 살충제 시장 규모는 2011년엔 218억9,500만원, 2012년엔
213억8,300만원, 2013년엔 221억6,200만원이었습니다. 이 자료만 봐서는 바퀴벌레 개체 수에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시장 규모가 3년간 200억원대 초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앞선 자료와 비교하면 바퀴 살충제가 '기어다니는 해충'
살충제 시장의 4분의 3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기어다니는 해충' 살충제 매출액이 높은 까닭은
'살인 진드기' 공포로 인해 진드기 살충제가 많이 팔렸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정말 바퀴의 개체 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까요? 그래서 10년 전 바퀴 살충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이번엔 '검색 신공'을 동원합니다. 2000년 한 의ㆍ약학 전문지에 "전체 살충제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말 준으로 약
1,10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중 파리, 모기용이 700억원대, 바퀴벌레용이 418억원대를 차지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군요.
"(바퀴벌레 퇴치제 시장은) 1994년 259억원에서 1995년 365억원으로 25.7%가 늘었으며 1996년 365억원으로
다시 12% 증가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모든 자료를 종합하면 바퀴 살충제 시장이 사실상 줄어들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전체 살충제 시장 규모가 2,000억원대로
성장하는 동안 바퀴 살충제 시장 규모는 되레 줄었다는 점, 살충제 가격이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퀴 개체 수가 줄었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퀴 개체 수가 왜 줄었을까요? 한 해충 방제업체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나 세스코 같은 해충 박멸 업체가
열심히 바퀴를 잡기 때문이지 뭐겠냐"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바퀴도 끈질기지만 바퀴 잡는 업체는 훨씬 끈질긴 모양이군요. 이
관계자는 "바퀴 살충제 효과가 점점 좋아지는 데다 바퀴 서식 환경이 안 좋아지는 것도 바퀴 개체 수가 줄어드는 이유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81915292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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